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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1/01/29, 13:44:01
수정일: 2001/02/19, 06:27:06
작성자: will


    천왕지왕2000-평론 ...    씨네21中
◎1999년, ◎감독 왕정 ◎출연 주성치, 장가휘


  주성치 영화는 주성치만의 ‘소우주’다. 그의 코미디는 논리로, 혹은 상식으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도저히 말로 풀이할 수 없는데,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피식피식 흘러나온다. 주성치가 출연하는 영화 속엔 나름의 법도와 규칙이 있다. 단지 치밀하게 계산하면서 ‘왜 저럴까?’라고 애써 이해하려고 들면 낭패 보기 쉽다. 그냥 저런가보다. 아, 귀신을 딱총과 초콜릿으로 잡으면 되네. 부인을 돈 받고 남에게 팔기도 하는구나, 그렇군 하면서 동참하면 재미있다. 소우주 속에 들어가 잠시 몸을 담그면 그만이다. <천왕지왕 2000>은 왕정 감독의 영화로, 주성치와 왕정은 <녹정기> 시리즈와 <도협> 등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홍콩 경찰에선 형사 양관을 파견해 페라리의 범죄증거를 찾고자 한다. 페라리는 금융계의 거물이자 상류층 인사지만 도박과 경마 등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해 돈을 번 파렴치한이다. 게다가 악질 사기꾼이기도 하다. 현장에 파견된 양관은 페라리의 여인 ‘첫사랑’에게 첫눈에 매혹당한다. 첫사랑의 장난질에 차례로 속아넘어간 양관은 경찰에서 하루아침에 겨나는 신세가 된다. 한편, 양관의 여자친구 ‘피자’는 페라리에게 복수하라며 도박 사기꾼인 형부 황사호를 소개시켜준다. 양관과 황사호는 처음엔 으르렁거리며 상대를 미워하다가 차츰 사제지간의 연을 맺는다. 페라리와 양관이 거대한 도박판을 벌이고 황사호는 전 재산을 내기에 건다.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인가.

여전히 주성치는 패러디의 황태자다. <천왕지왕 2000>에서도 수많은 홍콩영화와 할리우드영화를 가져다 베낀다. 갱단이 쏜 총알을 슬로모션으로 피하는 장면은 <매트릭스>에서 가져왔고, 패러디의 속도도 빨라져서 최근작인 <중화영웅>도 베낀다. <신정무문>을 만들었던 경력을 살려 이소룡 영화를 흉내내는 건 기본이다. 웃음을 자아내는 건 주성치가 일본영화 <링>을 TV로 보는 장면. 조용히 숨을 죽이고 화면을 지켜보는데 <링>의 가장 무서운 장면이 나타난다. 우물에서 긴 머리채의 여인네가 기어나와 앞으로 걸어나온다. 은근히 긴장된다. 그런데 흰 소복의 여인이 TV에서 빠져나오다 말고 주성치에게 소리친다. “좀 도와주라” 몸이 텔레비전에 걸려서 빠지질 않는 것이다. 기가 막히고 황당한 노릇이다. <천왕지왕2000>의 왕정 감독은 국내에 <정전자>와 <지존무상> 등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옛 기억을 되살려 도박영화의 요소들을 영화에 뒤섞는데 별로 효과적이진 않다. 주성치의 썰렁한 슬랩스틱 코미디가 없었더라면 <천왕지왕 2000>은 허전했을 것 같다.

<천왕지왕 2000>은 극단적 익살을 기대하는 사람에겐 실망을 안겨줄 수 있다. <홍콩 레옹> 같은 막가파 코미디의 경지엔 이르지 못하니까. 하지만 주성치의 매력이 대단함은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이유는 명백하다. - 남의 영화로도 모자라서 - 자신의 전작들까지 그대로 패러디하는 뻔뻔한 코미디 배우가 주성치말고 누가 있겠는가.

김의찬/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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