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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1/03/07, 10:33:53
수정일: 2001/03/07, 10:36:21
작성자: 운영자
 

 
튜니티처럼, 주성치처럼
 
<서유기>등 주성치 영화들

제목 한번 거창하군.인생의 영화라니... 어이구 인생까지 들먹거릴 정도로 대단한 그
무엇인가를 꼭 써야 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제길 써지지도 않잖아.그래서 나는 다리만
덜덜 떨다가 단골 술집으로 갔다구. 시원한 맥주를 마시면 분명 머리가 팽팽 돌아가
잘 써질 거야. 오래된 단골들만 북적거리는 곳. 베개에 눌린 머리로 앉아 슬리퍼 신고
혼자 앉아서 술을 홀짝 들이켜는 나와 비슷한 군상의 손님들이 많은 곳. 토요일 주말에도
남녀 한쌍씩 들어오는 손님은 없고 혼자 아니면 추리닝 바람의 남자들끼리 여자들끼리만
와서 조금은 초라해 보이는 자신들을 음악속으로 몰아버리는 그곳은 정말이지 패잔병들의
쉼터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 곳이야. 난 이곳을 동생들이랑 자주 오지.우리는 이곳의
사람들을 좋아해. 내 동생들은 위대한 술꾼들이지.술꾼운 우리 집안 내력인가. 아버지도
술을 좋아하셨는데 그분이 가장 좋아하던 영화는 <내 이름은 튜니티>였어.
키키키 튜니티라, 정말 기억만 하면 땀에 전 더러운 얼굴에 비열한 웃음. 하지만 모든
비열한 행동을 용서해줄 수 있는 푸르고 착한 눈(여기서 눈은 펄펄 눈이 아니라 눈알이야)
등이 기억나. 세상에 아버지는 그 멋있고 비장한 여러 서부극도 있는데 왜 그토록 비열한
주인공이 황당하게 활약하는 이 마카로니 웨스턴을 그리도 좋아했을까? 혹 반미주의자?
아냐아냐 냉정을 되찾자.아버지와 함께 그 영화를 까꺄거리며 보았던 우리는 지금도 비디오
가게를 돌아다니며 튜니티 시리즈를 찾아보곤 하지. 튜니티를 좋아하던 우리는 성장해서
그것에 필적할만한 인물을 찾아냈지.정확히 말해 내 남동생 녀석이 열광하면서 좋아하던
 주인공인데 어느덧 내 여동생과 나도 헤헤거리며 좋아하게 되었어. 아버지는 튜니티에
 남동생은 주성치에 캬 이런 우리 집안 남자들의 심미안은 정말 자랑스러워. 우리집은 동화
속 거인의 집처럼 6년 동안 손질 안 된 정원과 개똥 지뢰밭을 지나 현관을 들어서게 되어
있는데 내 생각에는 우리집 개도 이 주성치를 좋아하는 것 같아.맞아 우리가 사랑하는
인물은 바로 주성치야. 우리 3남매는 벌써 30대 전후의 성장한 어른인데도 누구하나 결혼을
해서 나가지 않고 토요일,일요일을 굳건하게 서로를 위로하며 함께 똘똘 뭉쳐 살고 있지.

 


물론 전화도 걸려오지 않지만.우리집은 이름하여 '역삼객잔'이야. 이런 주말이면 우리는
모두 TV앞에 모여 잘나가는 녀석들을 시기하며 독설을 퍼붓지.이럴 즈음 주성치를 빌려와
낄낄거리며 보다가 아쉽게 끝내기도 하지.<가유희사> <식신> <서유기> <선리기연> <심사관>
 <파괴지왕>, 심지어는 주성치가 카메오로 나오는 성룡의 영화를 보면서 입맛을 다시기까지
하지.그의 짧은 출연을 아쉬워하며, 우리 3남매의 주말은 줄곧 주성치의 캐릭터에 푹 빠져
주말을 온통 날려버리는거야. 맥주를 홀짝거리며 말야. 내 생각에 우리 3남매는 그 시간에
어린시절 튜니티를 보던 푸근한 향수에 젖어 있는 것 같아.옆에서 들리던 아버지의 감탄사만
이제는 들리지 않을 뿐이지.여러 가지 우여곡절로 뒤늦게 7년만에 대학을 졸업했는데(남들은
군대 갔다온 줄 안다니까) 첫 직장이 운좋게도 이른바 말하는 좋은 영화를 푸는 곳이었지.
<그린파파야향기> <길버트그레이프> <넬> <제8요일> <샤인>등등 기자 시사회나, 평론가
시사회 그리고 보도자료 등등을 써대면서 조금은 우쭐거리기도했지. 음음 고급영화 보급에
선봉이 되었다.이러며 하늘을 찌를 듯이 잘난 척을 하고 다녔던 것 같아.내가 푸는 이외의
영화는 우습게 보면서 말이지. 하지만 고급문화와 저급문화의 차이는 무어지.이런 바보같은
 이분법 논리로 아마도 나는 문화적 경쟁심리의 허를 잘 이용한 마케팅을 아주 잘했던 거 같아.
알고 보니 난 사기꾼이었던 같아.아 싫다....왜냐하면 밖에선 그러구 다니면서 집에선 주성치는
눈물 흘리며 보고 만화책을 끊임없이 사다 모으곤 했으니 말야.이런 이율배반적인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과감히 회사생활을 접은 지 이제 1년이 되었어.동생들은 축하해 주었지
(의료보험카드가 없어지는 걸 아쉬워했지만서두).여성영화제 등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나의
소속은 청년. 33살의 선택치고는 황당하지만 뭐 어때. 이제 시작인걸... 그리고 이곳은 주성치를
아주 좋아하는 악취미의 여장부 장모양도 있는데 말야.. 튜니티와 주성치처럼 조금은
비겁하고 힘도 없고 안 씻고(특히 이 부분이 맘에 들어) 그렇다고 극단적인 나쁜 길로
빠지지도 않는 그래서 그래서 묘한 패배감과 안도감도 느끼는 우리의 모습. 그들은 영화
속 인물이지만 관객들은 거기서 남동생을 아버지를 나 자신을 만난다구.그래
사람이 곧 영화인데 말야.어이 제목 바꾸라구 내 인생의 영화가 뭐냐구...
그리고 영화제에 주성치 좀 초청하라구.

 김정영 / 영화제작소 청년 회원 (http://www.freechal.com/MANHWAMANIA/)

 영화주간지 씨네21 - 214호 68페이지 99년 8월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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