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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1/03/08, 00:11:22
수정일: 2001/03/08, 00:12:27
작성자: 민경은
 

이게 언제 해석해놓은건데 이제 올리는건지..--;
죄송할 뿐..흐..


곡덕소와 인터뷰 하는 동안 그는 1.衰公(衰..자를 계속 쓰고 있는데..쿨하다..이런 류의 의미일거라 생각함..우겨봄..--;) 2.사 3.師父(高志森) 4.주성치(성자, 주생)이란 말을 자주 사용했다. 이 말들은 모두 주성치와 관계있는 것이고 앞뒤 순서에는 상관이 없다.

주성치를 만나기 전에 곡덕소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스승은 바로 고지삼이다. 그가 캐나다에서 홍콩으로 돌아온 후 가족과 누나의 반대로 한마터면 그는 이 세계로 들어오지 못할 뻔했으나 고지삼과의 인연으로 시나리오 쓰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어릴 때 만화 보는 것과 글씨를 못 쓰는 것 때문에 많이 혼이 났었다고 한다. 심지어 가족들이 모두 모여 그가 쓴 글씨가 무슨 뜻인지 연구하기도 했었으며, 그의 엄마는 그가 글씨를 발로 쓴다고까지 얘기했었다. 그런 그가 오늘날에는 오히려 글 쓰는 일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다.

90년 홍콩으로 돌아온 후 2, 3년간 코미디, 러브 스토리에서 액션물에 이르기까지 10 여편의 시나리오를 썼다. 고지삼은 그에게 쉬지 않고 시나리오를 쓰는 연습과 여러 가지 현장 공부를 시키기도 했다. 매 과정은 당연히 순탄하지 않았고 주성치와 그와의 만남은 첫번째 시험이었다.

 

 

 

<가유희사(家有囍事)>를 찍을 때 고지삼은 그에게 이번 영화에 참가하는 스태프들은 모두 일류 스태프들이라고 얘기했주는데 그가 현장에 가서는 한눈에 그 말이 거짓말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무슨 얘긴지 잘 몰라서 한 줄 생략..--;) 그가 고지삼에게 이 얘기를 다시 쓰지 않겠다고 얘기했을 때 그에게 돌아온 것은 '고명언(高明言)같은 사람도 지금 펜을 놓는다면 이후에 어떻게 다시 다른 얘기를 쓸 수 있겠는가?? 고명언의 경우에는 쓰건 쓰지 않건 아무 영향이 없지만 너의 경우에는 그것이 이후의 인간관계에 영향을주게 될 것이다' 라는 반 시간동안의 훈계였다. 그래서 그는 일주일 동안 주성치의 모든 연기 자료를 보고 마침내 주성치의 사상의 시작과는 완전히 다른 부분에서 점점 접근해갔다. 곡덕소는 이 일주일이 그와 주성치를 콤비로 만드는데 영향을 주었다고 얘기한다.

사실 캐나다에서 공부할 때 그가 시청하던 국태(國泰)방송국에서는 주성치의 <신자사형(新자師兄)>과 <230 천사기(穿梭機)>를 방송했었는데, 그 중 그가 녹화한 유일한 프로는 <흑백강시(黑白강屍)>였다. 그는 매번 주성치의 연기를 볼 때마다 "이 사람은 정말 衰하군!!"이라고 말했다고. <형의애인(哥哥的情人)>, <개세호협전(蓋世豪俠傳)>과 <타래자강호(他來自江湖)>를 보고는 점점 더 이'衰公'과 자신이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사실 그와 주성치 이력지는 모두 같은 류의 사람들이란다.

이번에 찍은 <大內密探靈靈發>은 곡덕소와 주성치가 처음으로 감독과 배우로서 만나는 작품이다. 외면적인 보도를 보면 모두 주성치의 얘기라고 생각되겠지만 그들의 관계는 오히려 외부사람들이 보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에게 감독으로서 어떻게 주성치를 조정하느냐..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는 서로 아주 열정적이에요. 맨 첫번째가 고지삼, 그 다음이 이력지와 주성치, 세 번째는 이미 언급한 것처럼 암묵적인 약속이 있는 그런 것. 왕정은 우리는 member of the team이라고 부르죠. 어떤 정해진 위치는 없어요. 모두 일에 임하는 자세는 한 가지에요. 누가 누구를 통제한다, 조정한다, 그런 것은 절대 없죠. 우리는 어떤 것이 work인지, 어떤 것이 안되는지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 것은 모두 같이 모여 즐겁게 웃으면서 얘기할 때 더욱 잘 알 수 있죠.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저의 의견에 따라야 하는 그런 이유는 없는 거죠. 그래서 한 번은 유가령이 우리가 웃는 걸 보고 우리에게 왜 웃느냐고 물었어요.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웃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죠." 주성치를 비롯한 그들 그룹이 서로 말이 잘 통하기 때문에 곡덕소는 다른 사람들
역시 그들의 생각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시나리오 원본이 나왔을 때 그들 이외의 사람들은 매우 이해하기 어려워서 곡덕소 감독은 모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많은 설명을 해야 했다.

필자는 주성치가 아니라 관중의 신분으로 여전히 주성치가 희극에의 스트레스를 백 배도 넘게 받고 있음을 이해한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 역시 그에 따라 점점 증가한다. 곡덕소는 주성치 영화를 찍을 때 제일 어려운 것은 마음의 적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주성치는 확실히 관중들을 아낀다. 유청운은 나와서 하하..하면 끝이지만 주성치는 반드시 하.하.하.라고 해야 하며, 아주 파안대소를 하게 해야만 비로소 만족을 한다. 여러 해 동안 주성치가 써보지 않은 웃음의 재료가 있을까?? 곡덕소는 확실히 있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만족감은 있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웃음의 재료가 80이라면 다른 연기자들의 연기는 70, 주성치가 연기하는 것은 100을 넘는다. 곡덕소는 주성치는 그가 아는 매우 총명한 사람 중의 하나라고 한다. 주성치는 그 자신의 귀신도 울고 갈 정도의 연기에 대한 이해력과 재능으로 계속 올라갈 것이다.

주성치가 이미 어떤 단계에 머물러 있지는 않는가..확실히 많은 사람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했을 것이다. 과거 주성치의 관중들은 상, 중, 하의 세 단계가 고르게 나뉘어 있었고, 구태여 애써서 생각하거나 직접 힘들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사람이 성숙해가고 변화가 생기자 더 많은 생각을 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결국 성공적으로 다른 단계로 올라가느냐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곡덕소는 이번에 영화를 찍는 이유 중 하나는 모두가 주성치를 보고 싶어하기 때문이며, 또 하나는 곡덕소 자신이 일방적으로 관중이 원하는 것, 자신과 생각이 비슷한 주성치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어떤 모습의 주성치든지 영화 상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말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극이 아니지만 그 배후에는 현대적인 것,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들, 주성치와 황제의 사업상의 관계라든지 이약동 때문에 가정상에서 아내와의 감정에 금이 간다든지 하는 것들이 있다. 곡덕소는 줄거리와 사건들이 교차하는 부분이 있고, 주성치에게 일어나는 일들과 영화에 나오는 무기들에는 조금 과장된 면이 있지만 다른 인물 관계 묘사는 비교적 사실적이라고 말한다.

많은 말로 주성치를 얘기한 것 외에 곡덕소는 다른 연기자들 역시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휴식기를 가졌던 유가령의 대범함을 칭찬하는 것 외에도 이약동(李若동) 역시 총명한 사람이며 매번 그와 주성치가 그녀에게 어떻게 연기해야 하는가에 대해 얘기하면 그녀는 즉시 그들이 얘기한 것에 적합한 표정을 지었다며 칭찬했다. 또 나가영(羅家英)에 대해서는 그는 연기자들 중의 중심배우라고 표현했다. 나가영은 카메라 앞에서는 완전히 자신을 드러내고, 그의 본래 성격인 귀엽고, 자연스러움과 편안함을 연출해내기 때문에 관중들은 당연히 그를 좋아한다고 얘기했다. 그 밖의 놀랄만한 발견은 장달명(張達明)과 유이달(劉以達)이다. 장달명은 황제역을 맡았고, 유이달은 대내 밀탐꾼 중 한 명이다. 곡덕소는 말하면서도 웃음을 참지 못했고, 장달명, 유이달 역시 '衰公'의 일원임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11월 23일(1995년)에 개시한 촬영이 96년 1월까지 두 달동안 계속되었다. 50여 일간 50여 개의 신을 촬영했으니 거의 매일 일한 셈이다. 20여개의 씬을 더 찍은 후 스태프들이 몽땅 다 식중독에 걸려버려서 중간에 잠시 쉬었고, 그 후 또 다시 30여개의 씬을 찍었다. 

극본에 비교적 많은 시간(두세 달 정도 걸렸다)을 쏟은 것 외에 대만, 중국, 홍콩에서 동시 상영을 희망하고 있으니 카피를 해서 국내외 심의를 거처야 비로소 동시 상영이 가능하다. 하지만 곡덕소는 음악 방면에도 시간을 많이 쏟았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했고, 그것로 원망도 많이 들었다. 비록 이번에는 잘 넘어갔지만 그는 영화를 찍는 2,3개월의 힘겨운 시간이 여전히 매력있다고 얘기한다.

곡덕소는 영화를 만드는 데 가장 큰 스트레스는 외부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과 같은 자신의 친구들에게서 오는 것이라고 한다. 영화를 잘 못 찍으면 자연히 만신창이가 되도록 욕을 먹는다. 하지만 매번 그들이 웃는 것을 볼 때마다 곡덕소는 매우 기쁘다. 아마도 이것이 창작자가 고생한 끝에 오는 보람일 것이다.
 
                                                  - <전영쌍주간 no.4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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